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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주기관차, 2007/05/28 09:09, [Interest]/Hot Issue]
월드컵 공인구가 생긴 이유는
제1회 월드컵 결승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로 공의 규격이 달라 전반전에는 아르헨티나의 공, 후반전에는 우루과이의 공으로 사용해 전반에는 아르헨티나가 이기고 있다, 후반에 자기나라의 공의 사용한 우루과이가 역전을 해 우승을 했다. 참고로 축구공을 아주 옛날에는 사람의 해골, 소나 돼지의 오줌통 같은 것으로 축구를 했는데, 1963년 최초의 공인구 산티아고가 생겨나면서 공인구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출처 : ostrich02님의 오픈 백과사전 '공인구가 생겨난 이유' Trackback Address :: http://kongmks.cafe24.com/trackback/211
[폭주기관차, 2007/05/28 09:01, [Interest]/Hot Issue]
완벽한 구의 형태를 만들기엔 가죽이란 것은 너무 평평합니다.
그래서 이 평평한 가죽들을 최대한 구에 가깝도록 만들기위해 5각형과 6각형을 조합했는데요. 이 5각형과 6각형을 조합해놓으면 180에 가까운각이나오지만 180도는 아니므로 이렇게 여러개를 이어가면 구의 형태를 만들수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정육각형과 정오각형만이 축구공으로만 되는것이 아니구요. 좌우 상하나 60도 간격으로 규칙적인 5각형이나 6각형으로도 축구공을 만들수있습니다. 출처 : 네이버 지식iN 답변글 Trackback Address :: http://kongmks.cafe24.com/trackback/210
[폭주기관차, 2007/05/28 08:52, [Interest]/Hot Issue]
베스트 일레븐. 10명도 아니고 꼭 11명이어야 할 이유가 따로 있었을까?
약간 기능이 다른 골키퍼를 제외하면 10명이라는 점에서 전혀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11이라는 숫자엔 뭔가 있을 법도 하다. 축구가 현대 스포츠로 자리를 잡은 것은 19세기 영국. 기록에 의하면 축구는 1850년대까지만 해도 15명에서 20명이 한 팀을 이뤘다. 그러던 것이 영국 사립학교들이 대항전의 한 형식으로 축구경기를 채택하면서 11명으로 굳어져갔다. 어핑검 스쿨, 셰필드 스쿨, 케임브리지 등 영국의 세 학교는 수차례의 정기전을 통해 각종 룰을 정했다. 11명으로 제한한 것도 이들 학교 축구팀 주장들의 모임에서였다. 이런 축구 규칙들은 1863년 12월 8일 영국축구협회가 창설되면서 공식 확정된다. 하지만 축구의 가장 기본적인 11명 룰이 영국을 넘어 범세계적으로 보편화된 것은 19세기가 거의 끝나가는 시점에서다. 축구가 첫 올림픽에 채택된 1908년 런던올림픽과 1930년 제1회 우루과이 월드컵에서는 당연히 11명씩 뛰었다. 왜 선수를 굳이 11명으로 못박았는지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비교적 설득력이 있는 것은 19세기 당시 영국 사립학교들은 모두 기숙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들 방 대부분 학생 10명씩을 수용했다고 한다. 각 방에는 학생 10명 외에 방장, 또는 사감 역할을 맡은 시니어가 있었고, 축구는 이 방 단위로 경기를 했다는 것. 사감 역할을 맡은 시니어는 주로 골키퍼를 맡았던 것으로 되어 있다. 영국에서 시작된 크리켓과 필드하키도 선수는 11명이다. 영국에서 건너가 신대륙에서 새로운 스포츠로 발전한 미식축구도 11명이 뛰고 있다. 출처 : 지식iN 답변글 Trackback Address :: http://kongmks.cafe24.com/trackback/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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